2화 공대생이던 나, 계산기 대신 키보드 두드리게 되다
3화 리더 없는 단체, 과연 회의가 가능할 것인가
고학년이 되면서 수많은 회의를 했다. 참석자의 반쯤은 지각하는 회의, 농담이 난무하는 회의, 곁길로 새는 회의, 효율이 넘치는 회의, 창의성이 넘치는 회의... 이중 내가 제일 좋아한 회의는 ‘효율이 넘치는 회의’다. 역시 회의는 가성비지.
내 믿음은 그대로지만, 휴학을 끝내고 처음 한 오늘의 회의는 왠지 싫지 않다. 이 회의는 가성비 회의의 대척점에 있었는데도. 나는 내 시간이 너무 중요한데, 개척자에 시간을 쏟는 게 싫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듯 이 시간과 공간이 ‘안전’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간 학생회관은 낯설었고 입구를 헤매다 도착한 교지실에는 꽃 한 송이와 손 편지, 초콜릿이 있었다. 간단한 선물이었지만 내가 벌써 개척자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았다. 신편위들이 무사히 개척자에 올라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행된다는 온보딩. 제일 먼저 배운 것 중 하나는 '노션'이라는 협업 툴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노션을 회의에 적용하니 이상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리더 없는 단체'가 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경험했던 회의들은 리더가 모든 걸 준비해와야만 했었다. 안건을 생각하고 머릿속에 잘 넣어뒀다가 회의 시간에 쏟아내야 했었고, 그러다 보니 회의 시간 동안 리더가 말하는 시간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다. 노션을 사용하면 각자 회의 전에 안건에 대해 생각하기도 쉬웠고, 회의 시간에도 같은 화면을 볼 수 있었다. 회의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기 위함일 것이다. 리더의 말을 줄이고 사람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듣게 한 회의는 원활했고, 그 수월한 합을 위해 여러 명이 노력한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한 회의들은 그때의 내가 한 최선이었지만, 아무래도 남는 아쉬움은 그저 그때의 내 무능을 탓해야 할 거다. 어쨌든 가만히 나무로 남아있는 건 적성에 맞지 않다. 푸른 잎을 휘날리며 둔감함을 다시 날카롭게 벼리고, 어차피 후회하겠지만, 지금의 최선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걸음 내 안으로 들어온 이 사람들과 이 자리에서 같이.